▲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밤이 되면 별이 왜 우는지.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 빗소리가 슬프다 해도…’ 오래 전 유명한 복서와 결혼한 여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다. 노랫말이 참으로 서정적이고 곱다. 한편,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 앞에서 수줍은 몸짓을 하며 여자가 콧소리라도 섞어서 ‘모른다.’고 몸을 비틀면, 남자는 아는 것 하나 없는 백치여도 ‘사랑하는 너’니까 그저 좋으리라. 이게 아마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르는 것’에 대한 최선의 해독일 수 있을 것이다.

전 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무려 20개의 죄목으로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밤샘 조사를 했지만 대부분 자신의 혐의에 대해 모른다고 대답했다 한다. 측근들이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진술한 부분까지도 그야말로 오리발 내밀며 시치미 떼고 모르쇠로 일관했던 모양이다. 그저 허위사실이고 정치보복이라고 반박했다고 하니,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모를 수가 없고 누가 봐도 알 것 같은데, 모른다고 잡아떼면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고 한다. 시치미 뗀다 라고도 하고 모르쇠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솔직히 살다보면 사실인 것을 아니라고 말하며 숨겨야 할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 정당하지 못하거나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경우다. 아니면 모른다고 하는 편이 상대방의 감정이나 건강을 위해 유익할 때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곧이곧대로 사실을 말하면 사람과의 관계에 치명상을 줄 때도 있고 물리적인 재산상의 피해를 볼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근래, 정치권의 거물들이나 재계의 총수들이 유난히도 법정에 서는 일이 잦았다. 특히 전직 대통령이 재임기간동안 저지른 비리로 인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심판대에 서는 일은 정해진 수순처럼 여겨질 정도다. 국가의 안정과 국민들의 안위를 위한 정치를 해 줄 것을 바라며 뽑힌 사람들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형상만 띠니 국민으로서 서글프고 분노에 차지 않을 수 없다. 권력과 명예는 살아가는 데 자극적인 유혹과 삶의 맛깔난 양념이 되는 것일까. 살아있는 것들이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누군가를 지배하고 거느리는 일은 본능적인 일일지도 모르는 일, 그러다보니 자신이 거머쥔 권력이나 힘으로 약자 앞에서 횡포를 부리고 과시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조직이나 기업이, 무슨 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동지나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은 대부분 친인척이다. 피를 나눈 사람들로 뭉쳤으니 그 결속력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힘은 더욱 커지고 부릴 수 있는 권한의 한계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결속은 결국 그들로 인해 해체되고 드러나며 그들의 언행이 물증이 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심점에 있는 당사자는 무조건 모른다고 잡아떼고 주변인들의 책임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그는 기하학적인 금액의 축재를 하고 알짜배기 기업도 운영했다고 한다. 몇 억대의 뇌물이 오가고 청탁 댓가를 상납 받는 부조리의 온상. 그것이 국가 원수 자리가 주는 권한이고 혜택이라도 됐던 것일까. 재임 5년 동안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이후로 영원히 추앙받는 국가의 원수는 왜 그들이 꾸는 버킷리스트에 들지 않는걸까. 늘 경제는 위태롭고 국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지만 그들은 그들만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꿈만 꾸는 모양이다.

처음 시작은 다분히 치밀하고 체계적인 계획이 있었으리라. 나름대로 방어막도 준비해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리가 드러나고 법정에서 추궁당하면 인지능력 떨어진 아이처럼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한다. 답은 이미 정해진 것처럼.

모르는 것은 수치이고 죄악이라고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 사는 중에 가장 서러운 것도 무지(無知)라고 한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교육을 받고 책을 읽고 학자들의 강의를 듣는다. 앎에 대한 욕구는 신성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는 것도 ‘모른다.’고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비겁함이며 타인에 대한 무례다. 아는 것에 대한 회피,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비겁한 변명. 바라건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최소한 모르쇠는 되지 말자. 참으로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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