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옥(수필가)

[검경일보 특별기고/ 이주옥(수필가)] 밤 11시쯤 지하철역에 내린 나는 집 앞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려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대부분의 가게가 셔터를 내린 거리는 간판불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역 근처 노상은 매일 몇 분의 할머니들이 전廛을 펴는 곳이다. 두어 분은 그때까지도 물건을 거두지 못하고 어둠속에 앉아 있었다. 상추와 깻잎 두어 줌, 정갈하게 까서 묶은 쪽파 한 다발도 시들대로 시들어 버렸지만 막차손님까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시골 태생인 나는 어려서부터 길들여진 입맛 때문인지 마트의 깔끔하게 포장된 야채보다는 벌레 먹어 볼품없는 열무나 꼬부랑 오이에 더 눈길이 간다. 하여, 가끔 이런 야채들을 떨이 해주곤 한다.

뙤약볕 아래서 작은 파라솔 그늘을 의지해 전을 편 할머니들은 호박 한 개라도 더 팔려고 옆의 할머니와 신경전을 벌이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간절한 눈빛을 던진다. 그럴 땐 싸온 점심 도시락을 오순도순 나누던 조금 전의 살가운 정은 간데없고 치열한 삶의 현장만이 남아있다. 검게 탄 얼굴에 깊이 팬 훈장 같은 주름은 지금껏 이들이 살아온 이력을 말해준 것 같아 짠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올라 와 바라본 노점엔 길가 할머니들은 한분도 보이지 않고 전 벌이는데 필요한 물건들만 비닐에 쌓여 비에 젖고 있었다. 서둘러 버스 승강장을 향해 가는데 상가로 올라가는 계단 삼각형 모양의 비어있는 공간에 비닐을 뒤집어 쓴 할머니 한분이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발밑에 놓인 자주색 대야엔 상추 두어줌, 꼬부랑 오이 서너 개가 빗물에 둥둥 떠 있었다. 노인은 야채대야의 빗물을 무표정한 얼굴로 연신 따라내고 있었다.

내가 타려는 버스는 저만치 오고 있었지만 나는 우산을 어깨에 걸치고 노인 앞에 쭈그려 앉았다. 상추는 3천원, 오이는 2천원이라 했다. 약 안치고 기른 것이라 “겁나게 맛나!”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사이 비는 계속 내리고 상추도 오이도 자꾸 물에 잠겼다. 만 원 한 장을 내고 거스름돈을 기다리는데 노인은 다른 나물봉지에 손을 넣고는 “조금 남았으니 이 나물도 마저 사라”한다. 아예 만원어치 다 사라는 계산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나물 봉지도 받아들고 일어섰다.

승강장에 서서 노인을 돌아봤다. 빈 대야를 엎어 빗물을 쏟아내고 몸을 일으켜 세우기는 했지만 머리는 땅에 닿을 듯했다. 저렇게 벌어서 남은 생을 스스로 바라지하는 것일까?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활처럼 굽은 노인의 등이 자꾸만 눈앞을 가렸다.

문득, 며칠 전 승강기 안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문이 열리자 우리 집 바로 아래층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어디가세요? 오늘 날씨 많이 덥다는데….” 내가 물으니 “응, 노인정에…, 거기 가면 에어컨 바람 빵빵하지, 안마 의자도 있것다, 천국이 따로 없어, 부녀회원들이 점심꺼정 챙겨주니 해질녘까지 놀다 오는겨.” 하신다. 노점 할머니와는 대조적인 삶이다.

이 할머니들은 요즘 세간의 화두인 ‘최저 임금 문제’나 ‘주52시간 근무제’ 같은 어려운 단어는 알지도 못할 것이다. 또한 매달 정부에서 주는 노령 연금 액수가 많은건지 적은건지 조차도. 다만 주위에 폐 끼치지 않을 건강과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의지와 혹은 어쩌다 보게 되는 손주 녀석들 손에 용돈이라도 쥐어주면 그나마 복된 노후라고 생각할 뿐이다.

100세 시대에 진입하며 ‘장수를 재앙’이라고까지 해서 노인들도 다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자식들조차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무게로 안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식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당신들을 위함이라지만 진실 한 쪽에는 자식들을 위해서가 더 절박한 이유일 것이다. 끝까지 놓지 않는 자식들을 향한 배려와 사랑이다.

저물어가는 인생 황혼길, 노점에서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비록 구부러진 등 펴지 못하고 누옥陋屋으로 돌아가지만 누운 잠자리가 온전한 휴식이 되고 부디 내일이 오늘만 같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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