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일보 이주옥(수필가)] 그 여인의 얼굴이 몹시 궁금했다. 전 남편을 죽여서 사체를 훼손하고 곳곳에 유기해 버린 여자. 그 잔혹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녀의 사무친 원한이 무엇이었을까. 내 자식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때는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사랑했던 한 남자였을텐데. 법은 그 잔혹성에 대한 대가로 신상을 밝히고 얼굴도 공개한다고 했다. 끔찍하면서도 궁금했다. 살인은 어떤 동기에서든 어떤 형태로든 무섭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건만 그런 일을 자행한 사람. 그것도 여자이기에 더욱 궁금했는지 모른다. 표독스러운 악마 같은 얼굴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하루걸러 터져 나오는 살인의 소식들. 그 사실만으로도 명치끝이 막히고 가슴이 떨린다. 요즘은 유독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장소를 가리지 않으며 각양각색의 방법과 도구로 살인을 저지른다.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아내를, 손녀가 할머니를, 연인이 연인을. 죽고 죽이는 일이 밥 먹듯 쉽고 무감각해 보인다.

얼마나 원한이 사무치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것은 오히려 영화나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인간 심중 저 끝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정점을 보는 것으로 족했을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버젓이 일어나는 일 앞에서 우리는 그저 인성의 실종과 인간의 잔혹성 표출에 절망하고 두려움을 느낄 뿐이다.

그녀는 얼굴이 알려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세상은 그녀의 잔혹함에 치를 떨고 흥분하는데 정작 본인의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면서 고개를 깊이 숙이고 머리카락을 내려뜨려서라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 이 또한 인간의 이기적인 이중성일까.

그녀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였을까.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을 죽이고 시신을 훼손해서 이곳저곳에 유기할 만큼 별거 아닌 쉬운 일이었을까, 아니면 죽은 사람은 그 만큼의 잘못을 한 것일까. 결국 공개된 얼굴. 그냥 수더분하게 생긴 평범한 여자였다. 보통 길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서른 중반 나이의 적당히 살이 있는 얼굴에, 약간 아래로 처진 눈꼬리가 어찌 보면 선하게도 보이고, 화장기 없는 투명한 피부가 오히려 슬픈 느낌이 드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의 어느 곳에 그런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체념한 듯 무표정하고 망연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여인의 얼굴에서 어쩌면 나는 애써 선한 눈빛을 골라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는 중에 격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격앙된 감정의 끝에는 종종 죽이고 싶다는 극한의 감정도 걸린다. 하지만 잠시나마 시간이 흐른 뒤에는 늘 감정을 잡아채는 이성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격한 감정에 온갖 명분과 당위성을 갖다 붙이다가도 결국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용서하며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어느 책에서는 ‘기억의 유실과 날마다 진행되는 망각은 우리를 난처하고 빈곤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그 말은 어쩌면 인문학적인 감성이 만들어 낸 이론일 뿐인지 모른다. 원한과 원망에 대한 망각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장치가 되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경험하지 않던가.

요즘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쉽게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잊는 것도 어렵다. 정작 잊어야 할 것들이, 발달된 모바일의 세상에서 늘 조롱하듯 기억을 소환하고 상기시킨다. 오래전 연인이 프로필 사진을 통해 웃음을 보이고 어제 나를 괴롭힌 지인이 코믹한 표정을 지으며 기억의 공유를 채근한다. 잊어야 좋을 것을 수시로 드러내주고 떠오르게 하면서 사람의 감정을 부추긴다. 헛되고 괴로운 기억을 부추기는 일등공신이다.

보지 않으면 잊혀지는 게 기억회로의 성질일 터, 망연한 눈빛의 그녀와 남은 가족들에게 기억의 회로는 끊임없이 오늘을 배회할 것이고 죽는 날까지 끊어지지 않는 독 묻은 사슬일 것이다.

그녀의 눈빛은 어느 곳을 향하고 있었을까. 자신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남자와의 인연의 시작, 그 인연을 져버릴 수 없었을 그들 사이의 아이, 그리고 지금 살인자가 되기까지의 먼 여정을 그 눈빛으로 끌어오고 있었을까. 아니 그녀의 눈빛 끝에 그녀가 무참하고 잔인하게 죽여버린 한 영혼이 가슴 치며 울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 눈이 오래도록 그 여인의 눈빛을 따라 가고 있었다. 새삼 악연과 맞물린 인간의 잔혹함이 가슴 서늘하게 한다.    

저작권자 © 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